버블 경제 붕괴의 시작
지난 글에서 일본의 버블 경제로 인한 일본 사회의 호화 생활을 서술했었습니다.
1986년부터 1991년 사이 일본의 경제 호황으로 부동산과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마치 꿈만 같은 부를 축적하고 호화 생활을 즐기던 일본 사회에 이 호황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이라고 예상한 일본인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버블경제로 인한 비이상적인 현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한 징후들로는 당시 규모가 커진 기업들이 구직자들에게 특급대우와 복지를 보장하고 사회 초년생에 너무 많은 연봉을 책정하는 등 기업들도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달콤한 버블경제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금융권에서 자신들의 실적을 위하여 담보를 과대평가하여 담보보다 초과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투기를 조장들이 서민들은 설 자리를 잃고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빈부의 격차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달콤함에 젖어 있던 일본 사회는 늪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당시 경제 상황을 버블이라고 인식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버블레이디 사건
일본의 버블 붕괴 직전 일본 금융계에 파장을 불러일으킨 일화로는 '버블 레이디 '가 있어 일화를 잠깐 들려드리겠습니다.
버블레이디 사건
버블레이디 사건의 주인공은 너무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오노우에 누이' 입니다.
오사카에서 술집 접대부를 하고 있었던 오노우에 누이는 버블 경제시대에 손님으로 만난 일본에서도 유명 건설회사인 '다이와 하우스' 사장의 아이진'愛人(애인)'이 되면서 그의 도움으로 긴자라는 부자 동네에서 고급술집을 두 개나 경영하게 됩니다.
일본 경제가 버블로 호황이던 시절 오노우에 누이는 은행 직원의 권유로 10억 엔이라는 금액을 채권에 투자하게 되는데 채권값이 급등해 투자한 지 몇 달 만에 엄청남 수익을 보게 됩니다.
단시간에 큰 수익을 얻은 오노우에 누이는 수익의 달콤함에 젖어 전재산을 주식에 투자하고 빚을 내어 더 많은 돈으로 주식을 매입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 주식시장은 무한 상승장이었기에 매입한 주식들은 매일같이 올랐고 그렇게 수익을 늘어 갈수록 주식을 담보로 더 많은 주식을 매입하게 됩니다.
오노우에 누이는 실제로 주식에 대해 무지 하였기에 투자 종목을 정할 때 기업의 재무를 보거나 가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집에 모셔놓은 두꺼비상에 절을 하며 즉흥적으로 떠오른 종목을 두꺼비상이 점지한 종목이라 정하고 매입을 하는 토속 신앙에 의지한 투자였습니다.
실패할 수 없었던 시기이었기에 수익이 날수 밖에 없었지만 오노우에 누이는 자신의 능력이라 착각하게 됩니다.
날마다 치솟는 주가로 인해 엄청난 수익을 낸 오노우에 누이는 금융계에서 유명한 스타가 되었고 은행들은 그녀에게 대출을 해주기 위해 줄을 서는 정도였습니다.
오노우에 누이 투자는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켜 더 많은 주식을 사는 방식으로 수익이 늘어날수록 대출금액도 늘어났습니다.
원하는 금액은 얼마든지 금융권에서 조달할 수 있었던 오노우에 누이의 대출금은 3조 엔에 달하게 됩니다.
한국 돈으로 30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주식에 투자하였고 일본 역사상 개인투자금액으로는 최대 금액으로 기록됩니다 그런 오노우에 누이는 서민들의 우상이 되고 그녀를 따라 투자 종목을 정하고 투자하는 많은 투자자들이 생겨났으며 금융계에서는 오노우에 누이를 투자 천재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고공행진 할 것 같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동산 가격이 무너지고 주가가 연일 폭락하기 시작하자 투자 금액이 30조 원에 달하던 오노우에 누이의 투자 손실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노우에 누이의 투자 손실과 더불어 그녀에게 투자 자금을 빌려줬던 일본 내 주요 은행들과 증권사들의 손실도 어마어마 하였고 오노우에 누이가 무너지며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되자 은행권들이 줄도산하였습니다.
부의 상징이자 일반 투자자들의 우상이었던 오노우에 누이는 결국 파산하고 감옥까지 가게 됩니다.
평생 투자자들의 우상으로 있을 것 같았던 오노우에 누이는 일본 버블 경제의 붕괴를 상징하는 '버블레이디'로 불리게 됩니다.
일본 버블 경제 붕괴
위 일화를 꺼낸 이유는 버블시기에 발생한 '버블 레이디' 사건이 지금도 일본 버블 경제의 부작용과 붕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요약되기 때문입니다.
버블 경제 붕괴 결말
실제 일본 사회는 끝없는 욕망의 대가로 버블경제의 붕괴로 인한 일본경제가 추락하였고 1990년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주가 상승을 이구동성으로 예상과 반대로 주식 매도자들의 증가로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은행들은 금리를 6%대까지 올려 대출규제를 강화하게 되었고 높아진 금리로 인하여 사람들은 대출상환을 서두르기 시작, 대출상환을 위하여 부동산 매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주택 가격은 급락하였습니다.
하지만 부동산과 주식을 다 팔아도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부실채권 규모는 약 13조 엔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면서 사실상 버블을 부추긴 은행들은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 되었고 버블경제의 분위기로 불황 시대에 접어든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일본에서는 저렴한 가격의 생활잡화점인 100엔 숍이나 유니클로 매장이 이 시기에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일본 버블경제가 붕괴시작과 결말이었습니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사회는 극복을 하고 다시 회복을 하였을까요?
이다음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 사회의 잃어버린 20년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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