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버블경제 시작의 배경
오늘은 일본이 미국보다 경쟁력이 있고 미국을 추월할수도 있다고 여겨졌던 1985년부터 1991년까지의 일본의 비정상적인 자산가치 상승 했던 시기, 일본버블경제 시기가 시작된 배경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일본의 버블경제 시작의 계기는 반도체산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본은 국가가 개입해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성장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국가가 반도체 산업에 직접 개입해 성장시키게 된 과정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은 1970년대 오일 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흔들릴때 첨단 산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기존의 생산업으로는 앞으로가 힘들거라 빠른 판단을 하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로 미국이 경제 호황기 시절 반도체 산업은 설계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생산 기술은 일본으로 넘겼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1979년 당시 돈으로 300억엔이나 되는 어머어마한 금액을 반도체 산업 기업들에게 보조금으로 지원합니다
혜택을 본 기업으로는 토시바,히타치,미츠비시,후지츠등이 있습니다.
보조금 지원뿐만 아니라 저금리 기업대출,해외 기업들의 일본 진출 촉진을 위해 규제 완화등 다양한 정책들을 도입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힘을 실어줍니다.
미국은 오일쇼크로 인해 유가 상승은 물론 물가가 크게 상승하고 경기는 침체되어 달러의 가치도 급락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과 동시에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정부의 지원아래 일본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980년 25%에서 1987년에는 80%로까지 수직 상승하게 됩니다.
반면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하던 미국의 인텔은 점유율이1%로 떨어지며 위기 의식을 느낀 미국이 일본 반도체 산업 성장배경이 국가 개입과 보조금이 있었다는 이유를들어 일본 반도체 산업 기업들에게 규제를 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자국내에서 높아지게 됩니다.
1960~1970년대 고속 성장을 계속하던 일본은 미국을 경제성장으로 거의 따라잡고 있었습니다.
미국도 상대적으로 성장율은 높아지고는 있었지만 당시 일본의 경제는 압도적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과 동시에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유지할수 밖에 없었고 일본은 무역 흑자를 위해 엔화의 저평가를 유지했습니다.
결국에는 당시 1달러가 250엔 수준으로 폭락하게 되었습니다.(현재 1달러 141엔)
그러다보니 미국의 수출품은 터무니없이 비싸졌고, 수출이 주력인 미국 기업들입은 타격은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 등의 동맹국에게 달러를 저평가 하겠다는 합의를 받아냈습니다. 이것이 '플라자 합의'입니다.
엔화 가치가 하락한 시점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일본은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치가 상승하면서 일본인들의 구매력이 급격히 좋아졌으며, 엔화 가치가 높아지다보니 일본인들은 여유가 생겨 쉽게 해외여행을 가고 해외에 나가서 외국의 부동산을 쇼핑하는 시대가 오게됩니다.
엔의 가치가 낮을때 수출로 부를 축적한 일본은 플라자협의로 인해 엔화의 가치가 상승하고 수출이 감소하자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금리 인하 및 대출 규제를 풀어 시중에 돈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은행에서는 집값의 2배까지 대출을 해줬습니다.일본사회는 쉽게 은행에서 큰돈을 빌릴수 있었기에 저축보다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에 집중적으로 몰리게됩니다.
이시점 부터 부동산 가격과 주식 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면서 경제 버블이 시작됩니다.
전세계가 주목한 일본의 경제 호황
여기에서 일본은 버블경제 시절에 어떤 생활을 했길래 아직도 일본 버블경제 시대를 부러워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일본은 미국 경제 추월은 시간문제고, 도쿄 땅을 팔면 미국 본토를 살 수 있다는 우스겟소리까지 나왔습니다 실제로 이 당시 황제의 거주지 도쿄 (고쿄)토지값이 캘리포니아주 전체 토지와 맞먹었으니 그냥 우스겟소리만은 아니였을수도 있습니다.
실제 1990년 일본의 부동산 전체 총액이 2000조엔, 한국원화로 2경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소니가 헐리우드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하고, 파나소닉이 유니버셜 픽처스를 인수 하는등일본 기업들은 남아도는 추체하지 못해 해외로 투자처를 옮기고 있었습니다 해외 부동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의 미츠비시 기업이 미국 뉴욕의 심장 록펠러 센터를 약2,200억엔,(한화2조 2천억원)에 매수하면서 일본은 경제적으로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의견들도 분분했습니다.
당시 세계 1위 부자가 일본의 세이부그룹 창업자 츠츠미 야스지였고 세계 억만장자의 70%가 일본이었습니다.
당시 젊은이들도 버블경제에 혜택을 보게 되는데 간단한 예로 기업에 면접을 보러 가기만해도 교통비 명목으로 1인당 2~4만엔씩 주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취직을 하지않고 면접보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차를 구매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 입니다.
취업을 하게 되면 사회초년생 연봉은 천만엔(한화 1억원)정도였고, 정기예금은 금리가 무려 8%에 달했다고 합니다.
해외 자동차가 엄청나게 많이 유입되게 되는데 지금 일본에는 구형 고급외제차들이 아마 버블경제 시대에 구입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한 캬바쿠라(여성접대부가 있는 고급 술집) 같은 술집에 가는 남자손님들은 단골 여성접대부에게 술집 가게 선물하기도 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3,629만 달러에 낙찰해가는 등, 피카소나 르누아르를 비롯하여 모든 해외 미술품들을 일본인들이 전리품이 되었습니다.
소설속 이야기 같은 일본 경제 호황기인 버블시대의 이야기로만으로 글이 길어져 일본 버블 경제 붕괴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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